K-STO, ‘전자증권 2.0’ 넘으려면…퍼블릭체인·스테이블코인 관건
2027년 2월 기관·사모 중심 1단계 시행…2단계 전환 기준은 아직 미정
전문가들 “원장 상호운용·책임체계·글로벌 결제 인프라 함께 설계해야”
2027년 2월 토큰증권(STO) 시장 개막을 앞두고 한국형 STO가 기존 전자증권을 블록체인에 옮겨놓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디지털 자본시장으로 성장하려면 제도와 기술 인프라를 한층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폐쇄형 분산원장 구조와 원장 간 이동 제한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 퍼블릭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 결제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토큰증권은 주식·채권 등 증권에 담긴 권리를 블록체인 기반 분산원장에 기록·관리하는 방식이다. 금융당국은 2027년 2월 1단계로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머니마켓펀드(MMF), 사모사채, 신탁 방식의 비상장주식 등의 토큰화를 허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정책방향에서는 같은 종목의 토큰증권을 하나의 분산원장에서 발행·유통하도록 하고, 발행 이후 다른 분산원장으로 옮기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방침이 제시됐다. 원장 관리 역시 예탁결제원과 증권사 등 계좌관리기관 중심의 폐쇄형 구조로 설계돼 있다.
뉴스1이 증권업계와 학계·연구기관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상당수는 이런 구조가 초기 안정성 확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장 확장성에는 제약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복진솔 포필러스 리서치총괄은 정형증권까지 토큰화 대상을 넓힌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증권사와 예탁결제원 등 기관만 참여하는 블록체인에서 토큰화가 이뤄질 경우 기존 시스템과 차별성이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별 원장 제각각…‘상호운용성’이 첫 과제
시장 확대의 첫 번째 과제로는 서로 다른 분산원장 간 호환성이 꼽혔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증권사마다 구축한 분산원장의 인프라와 기술이 서로 다른 만큼 향후 시장을 확장하려면 원장 간 호환 환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스마트콘트랙트 오류로 토큰 발행이나 권리 이전이 잘못 처리될 경우 발행사, 계좌관리기관, 블록체인 노드 운영자 가운데 누가 투자자 손실을 책임질 것인지 제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으면 기술 표준을 마련하더라도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호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도 기존 제도 안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제한적으로 활용할 경우 비용만 높아진 ‘전자증권 2.0’에 머물 수 있다며 스마트콘트랙트의 법적 효력과 안전성이 검증된 원장 간 이동 허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발행보다 유통”…거래량·담보 활용도 중요
토큰증권을 얼마나 많이 발행하느냐보다 실제 금융시장에서 얼마나 활발하게 거래되고 활용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병하 메리츠증권 전략기획담당 상무는 비정형자산 기반 증권의 거래 범위를 확대해 다양한 매수·매도 주문을 유도하고 유동성과 가격 발견 기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일현 신한투자증권 AX본부장은 비정형증권은 공모 기반을 넓히고, 정형증권은 담보 활용도를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토큰화한 MMF나 채권을 환매조건부채권(RP), 증거금 등 기관 간 거래의 담보로 활용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시장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1단계 넘어 2단계로…전환 조건부터 명확히
시장에서는 1단계에서 공모 주식·채권·펀드 등을 허용하는 2단계로 넘어가는 기준도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현재 2단계 시행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분산원장 장애 대응과 권리관리 정확성, 스마트콘트랙트 안정성뿐 아니라 실제 거래량과 시장 수요, 비용 절감 효과 등을 1단계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최윤영 한화투자증권 디지털자산리서치팀장은 1단계 시행 후 일정 기간 안에 평가를 진행하고 조건을 충족할 경우 2단계로 넘어가는 목표 시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공모시장 확대 속도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녹색채권이나 우량 회사채 등 위험도가 낮은 상품부터 일반투자자에게 시장을 열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반면 강민훈 NH투자증권 디지털사업부 대표는 공모가격 결정과 수요예측 등 기존 자본시장 절차와 토큰증권 시스템을 연결하는 데 추가적인 설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STO 연결하려면 퍼블릭체인·스테이블코인 필요
해외시장과의 연결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황석진 교수는 국내 표준을 먼저 만든 뒤 글로벌 기준에 맞추는 방식보다 설계 단계부터 원장 간 호환과 국제 자금세탁방지 체계, 국경 간 결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현 본부장도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할 수 있는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고 경쟁력 있는 상품을 유통한 뒤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온체인 결제로 발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민훈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 국내 토큰화 MMF 등에 투자하려면 자금 이동을 지원할 결제 인프라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K-STO의 성패는 블록체인에 증권을 기록하는 것 자체보다 서로 다른 원장을 연결하고 토큰화된 자산을 실제 거래·담보·결제에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 1단계 안정성 검증과 함께 2단계 전환 기준, 퍼블릭 블록체인 활용 범위,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인프라를 얼마나 빠르게 구체화하느냐가 한국형 토큰증권 시장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