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거래소 수수료 할인도 ‘재산상 이익’…증권사와 규제 형평성 논란
거래소 공시액 대부분 수수료 감면…업비트 78.7%·코인원 99.9%
증권사는 할인·면제 대상 제외…“동일한 영업행위에 다른 잣대” 지적
가상자산거래소가 고객에게 제공한 수수료 할인·면제까지 ‘재산상 이익’으로 공시하도록 한 현행 업계 기준을 두고 전통 금융권과의 규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증권사에서는 거래 실적이나 고객 등급에 따른 수수료 할인이 통상적인 영업활동으로 인정되는 반면, 가상자산거래소에서는 같은 성격의 혜택이 재산상 이익으로 집계되고 있어서다.
6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지난 4월 공개한 재산상 이익 제공 현황을 보면 전체 공시액 가운데 수수료 감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부분 80~100% 수준에 달했다.
거래소별로는 업비트가 78.7%, 빗썸 98.9%, 코인원 99.9%, 코빗 98.8%, 고팍스 96.9%로 나타났다. 공시된 재산상 이익의 상당 부분이 현금이나 별도의 리워드 지급이 아니라 고객이 거래 과정에서 할인받은 수수료였다.
‘고래’ 거래 많을수록 공시액도 커진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는 지난해 마련한 ‘가상자산사업자의 광고·홍보 행위 모범규준’을 통해 최근 5년간 특정 이용자나 거래상대방에게 10억원을 초과하는 물품·금전·편익 등을 제공한 경우 관련 내용을 공시하도록 했다.
공시 대상에는 제공된 이익 규모와 이용자 식별정보 등이 포함된다.
문제는 거래소가 고객에게 별도의 현금성 보상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도 VIP 수수료율이나 할인쿠폰 등을 적용받은 이용자가 거래를 반복할 경우 누적 절감액이 크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특히 거래 규모가 큰 이른바 ‘고래’ 투자자의 경우 거래 횟수와 금액이 커질수록 수수료 할인액도 빠르게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통상적인 거래 수수료 우대 정책이 수십억원 규모의 재산상 이익 제공으로 집계될 수 있는 구조다.
증권사는 수수료 할인 ‘재산상 이익’서 제외
이 같은 기준은 전통 금융투자업계와 차이를 보인다.
증권사 역시 기관투자자나 고액자산가, 거래 규모가 큰 고객을 대상으로 ‘협의 수수료’나 우대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고객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수수료를 할인받았는지 누적 절감액까지 개별적으로 공시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자본시장법 제58조 제2항은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금융투자회사가 고객별로 수수료를 달리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 관련 규정과 매뉴얼에서는 금융투자회사가 직접 받는 보수나 수수료를 할인·면제하는 행위를 재산상 이익에서 제외하고 있다.
거래량이나 고객 등급에 따른 수수료 차등 적용을 정상적인 가격 정책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가상자산거래소에서는 유사한 수수료 할인 정책이 재산상 이익으로 집계되면서 동일한 성격의 금융 서비스에 서로 다른 규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수료 경쟁 위축되면 투자자 비용 증가”
업계에서는 현재 기준이 지속될 경우 거래소 간 가격 경쟁이 위축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수수료 할인이나 VIP 혜택을 확대할수록 재산상 이익 공시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수수료 할인 프로그램이나 고객 대상 이벤트를 축소할 경우 결국 이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거래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거래소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거래가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전체 고객에게 적용되는 할인이나 합리적인 기준에 따른 등급별 수수료 혜택은 재산상 이익 공시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산정 기준이 개선되지 않으면 가격 경쟁이 위축되고 국내 투자자의 해외 거래소 이동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 금융으로 빠르게 편입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투자자 보호뿐 아니라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 사업자 사이의 규제 정합성을 맞추는 작업도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일하거나 유사한 영업행위에 대해 업권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가 향후 가상자산 규제 체계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