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 ‘수수료 0원’ 경쟁…증권사까지 디지털자산 주도권 싸움
디지털X·코인원 무료 수수료 승부수…업비트·빗썸 양강 구도 흔들까
증권사 거래소 지분 투자 확대…STO·스테이블코인까지 플랫폼 경쟁 확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에서 ‘거래 수수료 0원’을 앞세운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단순한 수수료 인하를 넘어 대형 증권사들이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확보에 나서고 토큰증권(STO) 등 새로운 디지털 금융상품까지 준비하면서 향후 금융 플랫폼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미래에셋그룹은 지난 8월 26일 가상자산거래소 디지털X를 출범시키면서 원화마켓 거래 수수료를 1년간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을 내놨다. 뒤이어 코인원도 전 종목 거래 수수료 무료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위권 거래소 간 고객 확보 경쟁에 불이 붙었다.
현재 시장 점유율 상위권인 업비트는 원화마켓 일반 주문에 0.05%의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다. 빗썸은 별도 신청 고객을 대상으로 0.04%의 수수료율을 제공하고 있다.
수수료 무료화 경쟁은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이용자와 거래량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거래소는 거래량이 많을수록 유동성과 가격 형성 기능이 강화되는 만큼 고객 확보가 플랫폼 경쟁력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증권사도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확보
전통 금융회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삼성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을 확보했고, 한국투자증권은 코인원 지분 약 20%를 보유해 3대 주주가 됐다. 키움증권 역시 빗썸 투자를 추진하고 있으나 지분 협상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사들이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투자에 나서는 것은 향후 디지털자산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 주식·ETF·채권 중심의 기존 투자 플랫폼에 가상자산까지 포함할 경우 고객의 투자자산을 하나의 금융 생태계 안에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그룹 역시 디지털자산 시장을 중장기 성장 분야로 보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겸 글로벌전략가(GSO)는 디지털X에 500억원 규모의 증자를 진행했다고 밝히며 향후 글로벌 투자 플랫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2018년 증권사 ‘평생 무료’ 경쟁 재현되나
가상자산 시장의 수수료 경쟁은 과거 증권사들의 비대면 주식거래 고객 확보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
2018년 전후 증권사들은 비대면 계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거래 수수료 무료 기간을 3년, 5년, 10년으로 확대했고 이후에는 ‘평생 무료’까지 내걸었다. 저렴한 수수료는 신규 계좌와 고객 자산을 끌어들이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다만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 경쟁은 당시보다 플랫폼 확보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객이 한 금융 플랫폼에 머물 경우 주식과 ETF, 채권, 해외주식뿐 아니라 가상자산과 연금, 신용융자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안에서 거래가 늘어나면 유동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추가적인 금융서비스 제공 기회도 늘어난다.
STO까지 가세…디지털자산 경쟁 영역 넓어진다
증권사들이 토큰증권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경쟁 구도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토큰증권은 미술품, 음악 저작권, 선박 등 다양한 자산에서 발생하는 권리를 디지털 형태로 발행·관리하는 증권을 의미한다. 최근 금융당국은 이러한 토큰화 대상을 조각투자에 국한하지 않고 주식과 채권, 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금융 플랫폼의 경쟁 대상은 가상자산 거래에만 머물지 않고 토큰증권과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디지털 금융상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무료 수수료 경쟁이 실제 시장 판도를 바꿀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는 업비트와 빗썸의 시장 비중이 높은 상황이며 신규 거래소의 수수료 무료 정책이 거래량과 고객 이동에 미친 효과도 아직 제한적이다. 가상자산 거래량 감소로 일부 거래소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장기간의 수수료 무료 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경쟁 확대될수록 시장 안정성도 과제
거래 수수료 경쟁이 실제 거래량 증가로 이어질 경우 투자자 자금의 이동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주식·ETF와 가상자산, 향후 토큰증권까지 하나의 투자 플랫폼에서 연결될 경우 자산 간 자금 이동 속도는 지금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특정 금융회사나 거래소로 시장 점유율이 집중될 가능성과 알고리즘 거래 확대 등 새로운 위험에 대한 관리 필요성도 함께 제기된다. 서로 다른 자산시장의 연결성이 높아질수록 한 시장의 가격 충격이 다른 금융시장으로 전달될 가능성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수수료 0원’ 경쟁은 단순한 거래비용 인하를 넘어 디지털자산 시장의 고객과 유동성을 누가 먼저 확보할 것인지를 둘러싼 플랫폼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향후 업비트와 빗썸의 대응, 중위권 거래소의 점유율 변화, 증권사의 가상자산 사업 확대와 STO·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 재편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