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T+1·거래시간 확대 동시에…한국 자본시장 ‘인프라 체력’ 시험대
토큰증권 하위규정 입법예고…2027년 2월 시행 앞두고 신종증권시장은 상품 부족에 개장 연기
T+1·거래시간 확대까지 맞물려…DTCC “속도보다 ‘안전한 속도’가 중요”
토큰증권(STO) 제도화와 주식 결제주기 단축(T+1), 거래시간 확대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한국 자본시장 인프라가 본격적인 전환기에 들어섰다. 시장 접근성과 자본 효율성을 높이려는 방향이지만 상품 공급과 유동성, 전산·외환·결제 시스템이 변화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일 토큰증권 제도 시행을 위한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하위법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 법률은 2027년 2월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토큰화할 수 있는 증권의 범위와 분산원장 요건, 발행인계좌관리기관 등록요건, 장외거래소 관련 규정 등이 구체화된다. 일반투자자의 장외거래소별 연간 순매수 한도는 1억원으로 제시됐고, 발행인계좌관리기관의 최저 자기자본 기준은 40억원이다.
문제는 제도와 실제 시장 사이의 속도 차이다.
한국거래소는 당초 10월 6일부터 6주간 운영하려던 조각투자 신종증권 모의시장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이에 따라 11월 16일로 예정됐던 정식 시장 개장도 순연됐으며 새로운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미술품·부동산·가축·저작권 등 시장에 공급할 신종증권 상품이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가 배경으로 꼽힌다.
토큰증권 시장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법적 발행 수단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기초자산과 매수·매도 유동성이 필요하다. 거래 인프라를 먼저 열더라도 상품 수와 거래량이 부족하면 가격발견과 환금성이라는 유통시장의 핵심 기능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27년 STO 시장의 초기 경쟁은 플랫폼 구축뿐 아니라 부동산·채권·K콘텐츠 IP·매출채권 등 투자자가 실제로 거래할 수 있는 자산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
T+2에서 T+1으로…외국인은 시간이 더 부족하다
기존 주식시장에서는 결제주기를 현재 T+2에서 T+1으로 하루 단축하는 방안이 주요 과제로 논의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미국 DTCC, 나스닥, 홍콩거래소와의 면담에서 T+1 전환을 포함한 자본시장 인프라 개편 경험을 논의했다.
T+1이 도입되면 매매 다음 날 증권과 대금을 결제하기 때문에 결제 위험과 자금이 묶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반면 거래 확인과 매칭, 자금조달, 증권대차, 수탁, 외환거래 등을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끝내야 한다.
해외 투자자에게는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시차가 있는 데다 원화 조달과 외환(FX), 글로벌 수탁기관과 브로커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티모시 커디히 미국 DTCC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는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에서 한국의 T+1 전환과 관련해 핵심은 단순히 결제를 빨리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속도(safe speed)’라고 강조했다. 자동화와 표준화, 예외거래 처리, 비상계획과 충분한 사전 테스트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거래시간 늘리면 전산·시장감시도 함께 늘어나야
거래시간 확대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글로벌 투자자의 시간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거래시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시간이 길어질수록 거래소뿐 아니라 증권사와 예탁·결제기관의 주문 처리, 시장감시, 전산장애 대응, 청산·결제 시스템도 더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시간만 늘릴 경우 시간대별 주문이 분산돼 일부 구간에서 매수·매도 호가가 얇아질 가능성도 있다. STO 역시 상품이 부족한 상태에서 유통시장만 먼저 확대할 경우 비슷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결국 STO, T+1, 거래시간 확대의 공통 과제는 ‘속도’보다 이를 뒷받침할 시장 인프라다. 토큰증권에는 충분한 기초자산과 유동성이 필요하고, T+1에는 외환·수탁·증권대차까지 연결된 결제체계가 필요하다. 거래시간 확대 역시 장시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전산·시장감시 시스템이 전제돼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 강화가 제도 도입 속도뿐 아니라 실제 시장이 충격 없이 작동할 수 있는 준비도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