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위기에도 ‘1달러’ 지킬까…핵심은 상환권·준비자산·국경간 보호체계
평상시 가격 안정과 위기 시 상환 안정은 별개…FSB “국경 넘는 구조가 취약성 키워”
MiCA·일본·홍콩·미국, 상환권·준비자산 규율 강화…ECB는 공동발행 구조 위험 경고
달러 등 법정통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빠른 송금과 결제 편의성을 앞세워 디지털 금융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평상시 시장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만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환 요구가 몰릴 때 실제로 약속한 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있는지가 진정한 안정성의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오문성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는 10월 18일 기고문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을 판단하려면 누가 상환 책임을 지는지, 준비자산이 법적으로 보호되는지,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상환 요구가 발생할 때 권리가 어떻게 보장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첫 번째 쟁점은 상환 책임의 주체다. 이용자는 거래소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샀다면 필요할 때 언제든 1코인을 1달러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거래소에서 코인을 매도하는 것과 발행자에게 액면가 상환을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매도는 시장에 매수자가 있어야 하지만, 상환은 약정이나 법률에 근거해 발행자에게 법정통화 지급을 청구하는 행위다. 평상시에는 두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시장가격과 법적 상환권의 차이가 분명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거래소의 책임과 발행자의 책임도 구분해야 한다. 거래소는 이용자를 대신해 코인을 보관하거나 매매를 중개할 수 있지만, 별도의 법적 의무나 약정이 없다면 해외 발행자의 지급불능까지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코인을 쉽게 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돈도 쉽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각국은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미카(MiCA)는 단일 공식통화에 연동되는 전자화폐토큰 보유자에게 발행자에 대한 청구권을 부여하고, 요청이 있을 경우 언제든 액면가로 상환하도록 규정한다. 일본은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을 취급하는 국내 거래업자에게 이용자 보호 조치를 요구한다. 발행자의 채무 이행이 어려워지거나 코인 가치가 급락할 경우에 대비해 이용자 코인을 약정된 상환금액과 같은 금액으로 매입하겠다는 약속과 필요한 자산 보전 등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준비자산의 법적 보호 여부다. 발행액만큼 준비자산이 존재하더라도, 발행자가 파산할 경우 그 자산이 다른 채권자의 청구로부터 분리돼 이용자 상환에 우선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자산이 우량 국채와 은행예금으로 구성돼 있어도 발행자의 일반 재산으로 취급되면 권리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다. 반대로 유효한 신탁 등으로 보유자 자산이 분리돼 있다면 보호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단순히 규모 공개만이 아니라 보관 명의와 수탁 구조, 도산 시 처리 방식까지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세 번째는 국경을 넘는 상환 구조다. 발행자는 한 국가에 있고 준비자산 보관기관은 다른 국가에 있으며 이용자는 한국에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발행자의 도산절차, 준비자산에 대한 권리, 실제 지급 과정에 서로 다른 법률이 적용될 수 있다. FSB는 10월 12일 보고서에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이 발행·유통·준비자산 보관에 여러 국가 기관이 관여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어느 한 국가만으로는 위험의 전모를 파악하거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홍콩과 미국은 감독이 미치는 범위 안에 상환 재원을 두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홍콩은 인가 발행자의 적격 준비자산을 원칙적으로 홍콩 소재 은행에 보관하도록 하고,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도 일정 요건을 갖춘 해외 발행자에게 미국 고객의 유동성 수요를 충족할 만큼의 준비자산을 원칙적으로 미국 금융기관에 보유하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각국이 자국 이용자 보호를 우선할 때 다른 지역 이용자가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USDC는 미국과 프랑스 법인이 같은 코인을 발행하고, 유럽경제지역(EEA)과 그 밖의 지역 이용자 보유량에 맞춰 준비자산을 나눠 관리한다. 서클의 공식 백서는 EEA 내 보유량이 크게 늘고 상환 요구가 집중될 때 미국 법인에서 프랑스 법인으로 준비자산을 제때 이전하지 못하면 상환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ECB 역시 EU 법인과 역외 법인이 동일한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하는 구조에서 EU 법인에 상환 요구가 집중되면 감독 범위 안의 준비자산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은 이름이나 평상시 가격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글의 결론이다. 위기 시에도 안정적이려면 상환 책임 주체가 분명해야 하고, 준비자산이 법적으로 보호돼야 하며, 국경을 넘는 지급 절차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앞으로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각국 규제가 상환권과 준비자산 보호, 국경간 자산 이전 문제를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느냐다. 스테이블코인이 세계적으로 하나의 돈처럼 유통되더라도 위기 때 권리가 국가별로 갈라진다면, 그 안정성 약속은 여전히 불완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